영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내면에 있는 영과 교통하는데 상처들이 걸림돌로 작용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에 속한 신령한 것들이 상처를 뚫고 진입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 충만을 유지하고, 성숙으로 나아가기가 버거운 것입니다. 상처가 아물기 전에, 건들면 또 덫 나듯이 사람이나 마귀가 우리의 아물어가던 상처들을 건들면 우리는 또 다시 상처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고 그 때 일어나는 현상이, 육과 영의 괴리현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몸은, 가나안에 있으면서 마음은 애굽에서 허우적거리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완치된 상처는 사단이 건드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치유 받은 상흔은, 영광과 자랑의 도구가 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대로 돌아온 전쟁 영웅들은 저마다 상처의 흔적들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이것은 월남전에서 총알 맞은 상처고, 이건 낙동강 전투 때 입은 파편의 흔적이고... 그리고 그 흔적들은, 고스란히 명예와 보상으로 열매 맺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밖에서의 상처는, 무익한 해가 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의 상처는, 유익한 영광으로 남습니다. 우리의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여, 영광이 되게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요? 이 세상에는 상처 없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만이 우리의 상처를, 아물게 할 뿐 아니라 영광과 성숙의 자원으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왜요? 주님에게는 상처가, 조금도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조개 속에 들어온 모래알을, 내어 뱉지 않는 조개는 진주를 만들어 내는, 영광을 얻게 되듯이 은혜로 상처를 품으면, 우리에게 박힌 수많은 모래알 같은 상처들도 아름다운 진주 같은 영광으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6.25의 상처위에, 경제부흥 이루었듯이 나무들이, 바람 불면 뿌리를 더 깊이 내리고 독수리의 날개가, 폭풍가운데서 강해지듯이 우리는 상처로 인하여, 주께로 더 깊이 더 빨리 가야 합니다. 하늘에 속한 것들을, 더 충만히 소유하고 누리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포용하기 위해서라도 한번 밖에 살수 없는, 아름다운 인생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 집중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내면에서 상처들이 합창할 때, 지휘자에 따라 불협화음이 될 수 있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 연주일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최고의 지휘자 되신 성령님이, 당신의 상처들을 장악하시어 아름다운 하모니를 연주하시도록, 온전히 맡겨 드리십시요. 분명한 것은 피 흘리고 있는 병사는, 전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하루. 하루는, 영적전쟁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