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출신 해직교사라고 하면 도종환과 안도현이 떠오른다. 그 가운데 <나의 경제>라는 시는 해직교사의 팍팍한 삶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나의 경제>가 현실이라면, <연탄 한 장>은 신념이라 하겠다. 두 시에 모두 '해직교사' 안도현이 녹아 있다. 이번에 부당하게 잘린 교사들이 '복직 전까지' 겪게 될 일이라고 생각하니 시를 읊조리면서도 가슴이 먹먹하다.
나의 경제
구두를 신으면서 아내한테 차비 좀, 하면 만원을 준다 전주까지 왔다 갔다 하려면 시내버스가 210원 곱하기 4에다 더하기 직행버스비 870원 곱하기 2에다 더하기 점심 짜장면 한 그릇값 1,800원 하면 좀 남는다 나는 남는 돈으로 무얼 할까 생각하면서 벼랑 끝에 내몰린 나의 경제야, 아주 나지막하게 불러본다 또 어떤 날은 차비 좀, 하면 오만 원도 준다 일주일 동안 써야 된다고 아내는 콩콩거리며 일찍 들어와요 하지만 나는 병천이형한테 그동안 술 얻어먹은 것 염치도 없고 하니 그런 날 저녁에는 소주에다 감자탕이라도 사야겠다고 생각한다 또 며칠 후에 구두를 신으면서 아내한테 차비 좀, 하면 월말이라 세금 내고 뭐 내고 해서 천 원짜리 몇 뿐이라는데 사천 원을 받아들고 바지주머니 속에 짤랑거리는 동전이 얼마나 되나 손을 슬쩍 넣어 본다 동전테가 까끌까끌한 게 많아야 하는데 손톱 끝이 미끌미끌하다 나는 갑자기 쓸쓸해져서 오늘 점심은 라면으로나 한 끼 때울까 생각한다 또 그 다음 날도 구두를 신으면서 아내한테 차비 좀, 하면 대뜸 한다는 말이 뭐 때문에 사는지 모르겠다고 유경이 피아노학원비도 오늘까지 내야 한다고 아내는 운다, 나는 슬퍼진다 나는 도대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어제도 그랬다 길 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새끼들 데리고 요즘 어떻게 먹고 사느냐고, 근심스럽다는 듯이 나의 경제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듯이 물었을 때 나는 그랬다 살아보니까 살아지더라, 잘 먹고 잘 산다고 그게 지금은 후회된다 좀더 고통의 포즈를 취할 것을 이놈의 세상 팍 갈아엎어 버려야지, 하며 주먹이라고 좀 쥐어볼 것을 아니면, 나는 한 달에 전교조에서 나오는 생계보조비를 31만원이나 받는다 현직에 계신 선생님들이 봉급에서 쪼개 주신 거다 그래 자기 봉급에서 다달이 만원을 쪼개 남에게 준다는 것 그것 받을 때마다 받는 사람 가슴이 더 쓰린 것 이것이 우리들의 이데올로기다 우리들의 사상이다 이렇게 자랑이라도 좀 떠벌이면서 그래서 입으로만 걱정하는 친구놈 뒤통수나 좀 긁어줄 것을 나의 경제야, 나는 내가 자꾸 무서워지는구나 사내가 주머니에 돈 떨어지면 좁쌀처럼 자잘해진다고 어떻게든 돈 벌 궁리나 좀 해 보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시지만 그까짓 돈 몇 푼 때문에 친구한테도 증오를 들이대려는 나 자신이 사실은 더 걱정이구나 이러다가는 정말 작아지고 작아지고 작아져서 한 마리 딱정벌레나 되지 않을지 나는 요즘 그게 제일 걱정이구나
연탄 한 장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