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만의 가족 상봉이 이뤄진 군산시내 한 아파트는 눈물바다였다. (사진=전북 군산경찰서 제공) 언니 김씨에게는 26년만의 만남이었고, 동생 박씨 역시 23년 만에 만나는 가족이었다. 부잣집에서 잘 먹고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 핏덩어리 딸들을 영아원에 맡긴 부모에게는 천고에 시간만의 상봉이었다.
같은 영아원에서 자라 20년 넘게 좋은 언니, 동생으로만 알고 지내던 친자매가 서로 핏줄임을 깨닫고 친부모까지 만나던 날.
부모는 대성통곡 하며 미안하다며 말을 잊지 못했고, 자매는 오히려 고맙다는 말로 부모를 위로했다. 상봉 현장을 지켜 본 경찰관은 그야말로 울음바다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10일 오전 10시 전북 군산시내 한 아파트.
김 양(26)과 박 양(23)은 보육원에서 자신들을 돌봤던 보육교사 2명과 군산경찰서 소속 경찰관 3명과 함께 이 아파트를 찾았다. 존재마저 알지 못했던 고모의 집이었다.
전날 서울에서 미리 내려 온 아버지(60)와 어머니(57)는 자매의 언니인 또 다른 두 딸과 함께 초조한 마음으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자매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어머니는 차마 딸들을 보지 못하고 주방 쪽으로 가 대성통곡했다. 아버지는 자매의 손을 잡고 앉았지만 한동안 입을 떼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은 말 대신 눈물로 흘러나올 뿐이었다. 20여 년 시간의 무게는 그렇게 정적 외에 그 어떤 말도 허용치 않았다.
감정을 추스른 아버지는 자매에게 언니 두 명을 비롯해 가족을 소개했다. 그리고 자매의 성이 왜 다를 수밖에 없었는지도 설명했다.
찢어질 만큼 가난했던 부모는 해외입양이 됐으면 하는 생각에 핏덩이인 김 양을 군산의 한 영아원에 맡겼다. 차마 부모의 손으로 친 딸을 놓고 올 수는 없어 친척에게 부탁했고, 친척은 영아원 카드에 생각나는 대로 김양의 이름을 적었다. 3년 뒤 박 양 역시 같은 이유로 같은 영아원에 보내졌다. 이때는 큰아버지가 박 양을 데려갔으며 아무렇게나 이름을 적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성을 갖게 된 탓에 자매는 군산의 같은 영아원과 같은 고등학교, 천안의 같은 회사를 다니면서도 핏줄임을 알지 못했다. 경찰과 친구들이 외모가 너무 닮았다며 '자매 아니냐'고 숱하게 말했지만 웃어넘긴 것도 이런 연유였다. 하지만 핏줄은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를 끌어당겼기에 지금도 자매는 군산지역에 같이 살며 서로를 의지해 온 것이다.
김 양은 "미안해하지 말아요. 건강하게 잘 있어 주셔서 고마워요"라고 흐느끼며 26년 만에 만난 아버지와 어머니를 꼭 껴안았다.
아버지는 "부모 없이도 잘 자라줘 고맙다"며 "해외로 입양돼 좋은 부모 만나 살고 있는 줄 알았다. 앞으로는 헤어지지 말고 같이 살자"고 힘주어 말했다.
자매는 부모와 두 언니, 그리고 남동생을 얻었다. 20여년 흩어졌던 일곱 가족은 이제 하나가 됐다. 앞으로 자매는 아버지의 성을 따라 개명을 할 생각이고 당장에는 직장과 대학 등 사정으로 힘들지만 조만간 서울의 부모 곁으로 갈 계획이다.
이 가족의 기적적인 만남을 주선한 군산경찰서 이종영 경위는 "자매도 잘 자랐고, 부모도 형편이 좋아진 것 같아 다행이다"며 "부모를 찾기 전부터 자매는 '어떤 상황이든지 부모를 모시고 살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 마음이 더 예쁘다"고 말했다.
조만간 군산경찰서는 부모 찾기 위한 업무가 더욱 분주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 편의 영화 같은 자매의 이야기를 지켜본 자매의 영아원, 보육원 친구들을 비롯해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경찰을 찾겠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들려오기 때문이다.